[수필] 각시붓꽃
[수필] 각시붓꽃
  • 성광일보
  • 승인 2024.04.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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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순
수필가. 성동문인협회 고문
한국산문 이사장
임길순 수필가

“그런 소리 하지 말어! 노인복지 받을 자격이 있어. 6.25 때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어? 우리 노인들이 고생한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여.”
할머니는 흥분해서 큰소리를 내서인지 숨까지 차올랐다. 조그마한 암자에서 기도가 끝나고 한가하게 차를 마시며 각자의 이야기를 달달한 햇살처럼 늘어놓고 있을 때였다.  

그때 비교적 젊은 나이의 한 신도가 우리나라는 노인 복지가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하던 끝에 나온 어르신의 단호한 말이었다. 꽤 오랫동안 보아온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 매무새가 조신했고, 늘 수줍은 미소로 겸손을 잃지 않던 분이다. 분위기가 싸하자 한둘씩 방을 빠져나가고 할머니와, 할머니의 오랜 벗과 나, 이렇게 셋이 남게 되었다. 할머니와 아랫녘 윗녘에서 오랜 세월을 같이 겪은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것들이 노인을 홀대한다고 같이 역정을 냈다.

할머니는 처음으로 당신 이야기를 하셨다. 6.25 난리 통에 할아버지가 군대에 가셨다고 했다. 그때 할머니는 스무 살밖에 안 된 새색시였다. 혼례를 치르자마자 새신랑은 신부를 시어른 곁에 남겨놓고 전쟁터로 떠났다. 그해부터 할머니는 절에 다녔다. 해발 500고지 월악산에 있는 작은 암자였다. 동네 논밭을 가로지르고 육십 리 길을 걸어걸어 오직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한 말이나 되는 쌀과 들기름, 참깨 등을 정성껏 머리에 이고 한 번도 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절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때 얻은 할머니 별명이 '산다람쥐'였다. 남편을 위해 60리 길을 걸어서 절에 오르는 며느리에게 동네 어른들이 붙여준 별명 이었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누구도 따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할머니 댁이 어느 동네인지 알고 있는 내가 어림짐작해보면 그 절은 차로 가도 삼사십 분 정도의 거리다.

전쟁이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어른들과 동네 사람들은 모두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시댁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으로 남편이 전쟁터에 나간 날을 기일로 잡아 제사를 지냈다. 할머니는 층층시하 시댁 어른들이 지내는 남편 제사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꼭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믿으며 새벽에 일어나 월악산 쪽을 바라보며 지극정성 기도를 했다. 그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서러움과 그리움을 참아냈을까.

 기도 덕분이었을까. 어느 날, 거짓말처럼 남편이 돌아왔다. 전쟁이 끝나고 남북 포로 교환 때 구사일생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팔십 중반이 다 되어가는 노인은 설화를 이야기하듯 애틋한 표현보다는 부처님이 살려서 보내주셨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러면서 힐끗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포로 교환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남편이 이불 속에서 몰래 한 말이란다.

남편으로부터 전쟁 통에 고생한 이야기, 포로수용소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다 잊었는데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남편이 포로수용소에서 있을 때 같은 남한 군인인데도 징글징글하게 동료들을 괴롭혔던 군인이 있었다고 했다. 남으로 내려오는 차 위에서 그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여러 명의 군인들은 그를 잡아끌어 차 밖으로 집어던졌다는 이야기였다. 아하! 나는 못 들은 이야기, 절대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내적 갈등을 일으켰다. 가슴은 대웅전 추녀 끝에서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처럼 쾅쾅거렸다.

할머니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던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그 이야기를 비밀로 간직해야 할 것 같아서 긴 세월동안 혼자 몰래 간직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와 함께 이야기를 들으며 앉아 있던 아랫녘 노인은 맞는 말이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90세가 넘었는데도 건강하셔서 아직 농사를 짓는다며 아침에도 농약을 등에 메고 배추 밭에 거름 주는 걸 봤다고 했다.

할머니가 각시붓꽃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새신부는 전쟁터에 나간 남편 소식을 기다리며 얼마나 애간장을 녹였을까? 함초롬한 각시붓꽃처럼 어르신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잊기라도 해야 할 듯 목소리를 높여 올겨울이 추울 거라며 날씨로 화제를 돌렸다. 할아버지가 김장밭에 약을 칠 때 무를 하나 뽑았는데 엄청 단단하다고 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김장무가 단단하면 그 겨울이 춥고, 단단하지 않으면 덜 추워, 참으로 신기한 일 아닌가?”하면서 내 동의를 구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어른들의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라는 걸 잘 아는 나는 할머니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신기해했다. 아랫녘 노인은 또 말을 이어간다. 

“저이가, 우리 클 때는 여자라고 글을 안 가르쳤는데 집안이 좋아서 육십갑자를 다 외어서 시집을 왔어. 그래서 여자지만 동네일을 다 했지.”하면서 마치 자기 일 인양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 말은 친구가 하는 말을 다 믿어도 좋다는 말일 거다. 두 노인은 60년 넘게 아랫녘, 윗녘에서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 웬만한 혈육보다 끈끈한 정으로 힘든 세월을 같이 보냈다고 한다.

한두 해가 더 지나자 절에서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렸고 혼자 집에 있게 할 수가 없어 오시지 못했다며 오래된 벗이 소식을 전해 주었다. 할아버지가 바나나를 좋아하신다며 챙겨 가던 모습이 생각나서 과일 한두 가지를 챙겨 두 분을 뵈러 갔다. 할아버지가 치매는 심하지 않은데 할머니가 없으면 무얼 자꾸 끓이려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서 꼼짝 할 수가 없단다. 노란 바나나를 하나 뜯어 할아버지에게 건네주는 모습이 금실 좋은 노부부였다. 할아버지는 90이 넘는 노구지만 젊었을 때의 몸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풍채가 좋았다. 강골 있는 당당한 어께와 아직은 살아 있는 눈매에서 얼마나 많은 말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왔을까 생각했지만 그 깊은 속사정을 어찌 내가 다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다음 해에는 할머니도 치매가 왔는데 할아버지 보다 더 심해서 두 분을 같은 요양원에 모셨다는 말을 아들로부터 들었다.

나는 나지막하게 속말로 이렇게 기도해 본다.
“할머니 말이 맞았어요. 올겨울은 날씨가 추워서 김장무가 엄청나게 단단하고 달았어요. 각시붓꽃 할머니, 이제 할아버지와 손 꼭 잡으시고 헤어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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