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부족사회
관용부족사회
  • 성광일보
  • 승인 2017.05.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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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상 범 교수/세종사이버대학교 자산관리학부 /국민경제정책연구소 소장
▲ 김 상 범 교수/세종사이버대학교 자산관리학부/국민경제정책연구소 소장

얼마 전 한 대학생과 관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게임 LOL에서도 같은 팀원에 대해 관용하지 않으면 게임에서 이기기 힘들다고 하면서 경험을 말해주었다. LOL은 온라인게임이면서 팀을 나누어 전투를 벌이게 된다. 팀원은 온라인에서 사전에 짜인 그룹으로 하던지 온라인에서 임의로 선택되어진다. 때로는 낯선 사람들이 같은 팀원이 되는 셈이다.

서로가 잘 아는 사람들이면 비교적 예의를 잘 갖추지만 모르는 사람이면 끝까지 예의를 갖추기란 쉽지 않다. 게임이 시작되고 전투가 벌어질 때, 전투가 유리하게 전개되면 별 문제가 없이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모르는 사람이므로 같은 팀원에 대해 무리한 요구, 욕설, 인격비하의 말이 오고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어김없이 그 전투는 패하고 만다는 것이 그 대학생의 설명이다. 욕설과 모욕을 당한 팀원은 팀을 위해 일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고, 심지어는 상대방을 위해 일부러 져주기도 한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비록 불리한 상황이더라도 끝까지 예의를 지키고 하나의 실수라도 용납해준다면 그 동료는 게임이 종료될 때까지 같은 편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다.

전투적 상황에서 각자가 게임에 헌신함과 동시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이 세세한 전투과정에서 최대한의 창조적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결국 조그마한 실수에도 관용을 베푼 경우에서의 승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게임에 불과하지만 관용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내가 속해있는 테니스클럽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래 10여명이 테니스를 같이 했다. 해가 바뀌자 테니스를 더 잘하는 4명이 자기들끼리 클럽을 만들겠다고 하고 분리해 나갔다. 수준높은 사람들끼리만 시합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팀을 폐쇄적으로 운영했다. 이들이 떠난 후 남겨진 6명은 테니스 레벨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클럽입회를 받아들였다.

2년이 지난 후 이들 두 클럽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클럽을 떠난 4명은 회원들끼리 다툼이 벌어져 자연스럽게 해체되고, 남겨진 6명은 또다시 10명의 든든한 회원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의 실력에 대해 관용하고 회원가입을 개방적으로 유지하느냐에 따라 클럽의 운명이 갈라지게 된 것이다. 

한 시절을 지배했던 제국들은 관용으로 성장하고 관용의 부족으로 쇠락했다. 로마는 정복지의 주민이 로마의 황제에까지 오르는 관용으로 대제국을 이루었다. 몽골제국의 정복사업은 칭기즈 칸과 그를 따르는 여러 명의 이민족 결사체인 발주나 맹약으로부터 시작한다.

네덜란드의 부흥은 이민족을 받아들여 그들로부터 얻은 과학과 금융기술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들은 세계최초의 은행, 증권거래소, 국가가 일체 간섭을 하지 못하는 금융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경제시스템은 영국이나 미국으로 유래된 것이 아니었다.

놀랍지 않은가. 오늘날 러시아나 중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조차도 누리고 있지 못한 선진 금융시스템을 17세기 네덜란드는 가지고 있었다. 영국은 세계최초로 계약을 통해 국왕의 절대적인 권한을 제한하는 시도를 했다. 그것은 마그나카르타라는 대헌장인데, 영국은 이것을 통해 자유와 관용의 물꼬를 열었다. 그러한 관용은 밀농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척박한 토지를 가진 영국이 세계최초로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하는 근본 원동력이 되었다.

2인자를 용납하는 사회는 관용적인 사회이다. 2인자들을 용납하는 사회는 혁신에 한발 다가서있다. 2인자들은 주류가 가지는 편견에서 벗어나 혁명적인 사고를 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2인자가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낸 경우는 너무나 많아서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함경도 지방으로 귀양간 멸문된 집안 출신이었다. 미국의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사업실패, 이혼, 자식의 죽음, 선거에서의 낙선을 겪은 실패자였다. 성경의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을 당해 애굽에 팔려간 노예였다. 다니엘은 간신들의 신고로 사자 굴에 떨어져 죽을 뻔하였고 왕비의 모함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조선시대의 위대한 과학자의 한 사람인 장영실은 노비출신이었다.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시대를 열었던 영조와 정조는 정실출신이 아니라 첩의 자식이었고 그들의 정책은 포용의 탕평책이었다.
우리 사회는 이들 실패자들과 2인자들, 비주류들을 담아낼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관용부족사회가 아닌지 스스로 물음표를 던져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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