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성광일보
  • 승인 2017.03.2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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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사회
▲ 김정숙 논설위원

재수를 해서 시험에 합격한 대학에서 교수가 최종 면접을 하며 경제학과에 왜 지원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돈이 벌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교수가 왜 돈이 벌고 싶으냐고 다시 묻기에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채시험에 합격한 직장은 돈이 많은 곳이었다.
돈 더미 속에서 돈에 살고 돈에 우는 일상이었다.
어쨌거나 직장에 있는 시간만큼은 돈 걱정 없었다.
물론 그 돈이 내 돈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루 종일 돈 냄새와, 돈 먼지와 돈 세는 소리로 가득한 돈 공장 같은 곳에서 원 없이 돈을 만졌다.
책상을 닦으면 녹차가루 같은 돈 가루가 푸르스름하게 묻어나서 돈 때문에 돌 지경이었다.

5년여의 직장생활이 흐른 뒤 대학 면접시험을 보았던 학과 교수가 고객으로 방문했다.
교수는 과거 나와의 첫 면담을 기억하며

“돈을 벌고 싶다더니 여기서 돈 버는구나!, 이제 돈 걱정 없이 살겠네. ” 라고 말했다.

돈에 파묻혀 돈을 벽돌처럼 나르며 지내니 돈 걱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돈이 없으면 없어서 걱정 돈이 있으면 더 갖고 싶어서 걱정이었다.

돈은 그랬다.
요물이었다.
술에 취해 몸이 절고 혀가 절을 때 조차도 돈 얘기만 하면 잠자던 감각도 소금벼락을 맞은 미
꾸라지가 살려고 팔팔 뛰는 것처럼 팔딱팔딱 고개를 들었다.

나는 늘 돈 벌기를 원했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돈을 벌어서 무엇에 쓰려는지 그 용처가 불명해도 한 푼이든 두 푼이든 버는 걸 원한다.
쓸 줄도 모르면서 왜 버느냐는 핀잔을 듣지만 그래도 나는 그저 벌기를 원한다.

버젓한 꿈이 있어서 큰돈을 벌려고 한다면 할 얘기도 많을 거다.
그러나 난 해변에 큰 호텔을 짓고 싶다든가 많이 벌어서 사회에 공헌을 한다든가하는 폼 나는 목적성도 없다.

그저 목숨 줄 붙어 있는 한,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건 삼시세끼 밥 먹는 행위처럼 자연스런 행위다.

끊임없이 경제활동을 하는 나를 보던 친구는 내 전생에 돈 귀신이라도 보았느냐고, 돈 귀신에게 물려서 돈을 잡는 중이냐고 물었다.

왜 나는 끊임없이 돈을 벌려고 할까?
친구 말대로 전생에 돈 귀신을 보았던 걸까?

내 큰 언니가 그랬듯이 나도 수중에 돈이 없으면 불안했다.
먹을 게 없어서 끼니를 굶었던 언니처럼 내 유년시절이 끔찍하리만치 비참했던 게 아니었는데도 돈이 없으면 늘 불안했다.
돈이 필요했던 대학시절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경험 때문인 듯 했다.

지금 당장 먹을 게 있어도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어미의 마음처럼 내일 까지 내가 안전하길 바랬다.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아직 오지 않았어도 올까봐 두려웠다.

그건 아마도 건강을 잃어 본 사람이 건강 염려증으로 조그마한 몸의 신호에도 과한 반응을 보이는 것과 같았다.

이젠 아이들도 성인이 되고 이만하면 덜 먹고 덜 입으며 살면 그럭저럭 살겠거니 싶었는데 요즘 들어 또 다시 돈 걱정할 일들이 생겼다.

100세 시대에 실비보험 하나 없으면 100세까지 어떻게 살 거냐며, TV홈 쇼핑 쇼 호스트가 빨간 립스틱이 마르도록 외쳐대고, 라디오에선 100세 건강시대에 건강 이상 징후를 얘기하며 건강 검진을 권한다.

일간 신문에선 100세 시대에 국민연금은 꼭 가입해야 안전 빵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버스 전면 광고는 관절이 튼튼해야 100세까지 살 수 있으니 관절 수술을 권한다.

치과에선 이가 튼튼해야 100세까지 살 수 있으니 임플란트 하기를 권장하고, 수영장 샤워실에선 100세를 살려면 치매에 걸리지 않아야 하니 노래가 치매 예방에 좋다는 노인의 목소리가 물줄기를 타고 내린다 .

100세 시대를 살아 내려면 운동도 해야 하고, 연금도 들어야 하고 연골 수술에, 임플란트에 실비보험에, 피부관리, 식생활관리, 노래공부까지 할 거 천지다.

칼만 안 들었지 돈을 안 주면 찌르겠다는 강도의 위협처럼 이런 많은 걸 준비 못하면 100세 전에 죽을 것 같다.

100세를 살아갈 사람들.
누가 100세를 살아갈 사람들일까?
이미 100세를 살아낸 사람들은 이런 걸 다 준비해서 살아낸 걸까?

나는 몇 살 까지 살 수 있을까?
100세 까지 살 수 있을까?

진달래 피고 새가 우는 이 좋은 세상을 100세까지 산다면야 얼마나 좋을 까 마는 인간의 심신이 산화와 퇴행의 노화가 진행되는 한, 10살과 100살의 차이는 바람 빵빵한 풍선과 바늘에 찔린 풍선 같을 터인데 100세를 사는 중에도 빵빵한 풍선을 유지하는 공기의 양만큼 비축해야 하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서 병원갈 일은 많고 소득은 없으니 미리 비축하는 곳간의 쌀도 의미는 있으나 이처럼 100세를 향해 준비만 하다 보면 나는 언제 쯤 돈을 버는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100만원이 필요해서 100만원을 벌었더니 1,000만원이 또 필요한 시대가 왔으니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 1,000만원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일까?

내 청년시절 결핍의 불안이 중년까지 비축하는 트라우마로 가득했는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으로 나는 또 다시 얼마나 많은 현재의 삶을 저당해야 하는 것일까?

청년 시절엔 학비 버느라, 성인이 되어선 가족과 사느라, 중년이 되어선 100세를 살려고 평생 준비만 하다가 좋은 시절 다 가고 죽는다면 나는 그때 뭐라고 말할까?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는 묘비와 반대로

“준비만하다가 좋은 시절 다 갔다.”고 말할까?

“100세는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고 말할까?

내가 느끼는 끝없는 사회적 위협은 어디서 온 걸까?

사회가 위협하는 걸까?
내 스스로 위협받길 자초하는 걸까?
당신은 어떤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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