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전세와 서희의 리더십(1)
동북아전세와 서희의 리더십(1)
  • 서울동북뉴스
  • 승인 2012.05.0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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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길랑<비전경영전략컨설팅 대표>

 1.한반도 주변 정세
가.제국주의와 침략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은 제국주의 국가였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자본주의는 급속히 발전하여 19세기 중엽부터 자본의 집중과 집적을 통해 독점 자본주의가 등장하였다. 독점 자본주의는 값싼 원료와 자국에서 생산한 상품의 시장, 그리고 잉여 자본의 투자 지역을 찾아 아직 자본주의가 성립되지 않았거나 미숙한 지역을 무력으로 침략하여 식민지화하였다. 이것을 제국주의라고 한다.

제국주의는 침략적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국가 간의 경쟁과 대립으로 발전하였으며, 사회 진화론의 영향으로 후진 지역을 문명화 시킨다는 명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찍 공업화를 이룩한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주의 대열에 앞장섰다. 금융자본이 발달한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그 뒤를 이었으며, 국가적 통일을 달성한 러시와와 일본도 19세기 말에는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일본·러시아가 우리나라 한반도를 침략하였고, 중국은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은 침략과 피침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모두 한반도와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각국의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어 이들 강국들은 우리나라 운명을 좌지우지해 왔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각국의 역사적 관계와 현재의 문제점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의 동북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①한국과 일본 ②한국과 미국 ③한국과 중국 ④한국과 러시아 ⑤일본과 중국 ⑥일본과 러시아 ⑦일본과 미국 ⑧미국과 중국 ⑨미국과 러시아 ⑩중국과 러시아의 순으로 기술한다.

나.한국과 일본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서 한반도와 주변 국가를 침략한 나라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국교가 성립되기 전부터 침략을 했었다.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연안에 해적질을 해왔고,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을 일으켜 7년동안 우리 국토를 유린하면서 우리 국민의 인명과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일본은 19세기 중반에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후 서구 제국과 통상의 확대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국력을 신장시켜왔다. 이를 바탕으로 1876년 함선과 군대를 동원하여 강압적으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12개 조로 되어있는데 중요한 내용은 ①조선이 자유주의 국가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②20개 월을 기하여 부산과 그밖의 2개 항구를 개한한다. ③일본은 수시로 조선의 해안을 측량할 수 있다. ④개항장에는 일본인 조차지(租借地)를 설정할 수 있다. ⑤개항장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일본인에 의하여 일본법으로 재판할 것을 규정한 치외법권(治外法權)의 조항도 들어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자주 국가의 나라로 규정한 것은 그들의 침략의도가 없었던 증거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목적은 청나라의 종주권(宗主權)을 배격함으로써 청나라의 간섭없이 조선에 대한 침략을 가능하게 길을 트자는 데 있었다. 국제법에 어두운 조선에 일본은 자신이 서양 여러나라로부터 강요당했던 불평등 조약을 강요한 것이다. 통상조약의 체결을 위하여 함선과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위협한 가운데 체결한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 조약의 중요한 내용은 개항(開港)문제였다. 과거에 대마도의 종씨(宗氏)와 무역을 하던 분산항(釜山港)을 일본은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그 이외에 2개의 항구를 더 개방시키려고 하였다. 일본이 선정하려는 2개항의 항은 단순한 무역항이 아니라 러시아의 남하를 대비할 수 있는 항구였다. 많은 논쟁 끝에 동해안은 원산(元山), 서해안은 인천(仁川)을 선정 개항시킴으로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였다. 이들 개항장에는 일본의 조차지가 생겼는데 거기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영토이면서도 조선의 지배를 받지 않는 특수 지역이었다.

이와 같이 일본은 강화도 조약 때부터 조선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인 침략을 위한 계획으로 처리해 갔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이 한국 침략의 제1차 단계였던 것이다.

일본의 국력은 날로 커져갔다.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로부터 10년 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일본이 한반도 정책을 구사하는데 제동을 걸 나라는 없어졌다. 1905년 태프트·가쯔라 밀약(1905.7.29)후 을사보호조약(1905.11.17)을 강제로 체결한 후 조선에 고문단을 파견했고, 1907년 정미 7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 중앙정부의 차관은 일본이 차지하고 차관정치를 실시했다. 사실 이때부터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드디어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을 하고 35년 간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했다. 현재의 문제는 독도 영유권과 동해표기, 그리고 위안부 문제가 있다.

다.한국과 미국
미국은 1776년, 동부 13주가 뭉쳐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독립 전쟁을 통해 독립한 국가다.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준비하면서 동부 13주가 뭉쳐야 했기 때문에 제일 먼저 Catchphrase를 만들었다. "United We stend, Drivided we fall?"이다. 지금도 미국은 이 Catchphrase의 정신을 지키고 있다.

미국은 1866년 우리나라와 첫 인연을 갖게 된다. 미국 상선 저너럴 셔먼(Genernal sherman)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와서 통상을 요구했으나 조선 조정은 거부했다. 셔먼호는 이에 분개하여 평양 시민에게 행패를 부렸고, 중국인 이현익을 감금하는 등 못 된 짓을 하자 평양의 관민이 합세하여 불태워버렸다.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에서 소각되어 그 종적을 감추자 미국은 이 사건을 조선을 개항시킬 수 있는 계기로 이용하려하였다. 드디어 고종 8년(1871년)에 북경에 주재하는 미국 공사 로우(Low)와 미국의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Rodgers)로 하여 군함 5척을 거느리고 침략해 왔다. 이 때 대원군은 병인양요 이래로 성곽을 수리하고 포대를 축조하고 대포를 주조하는 등 국방을 게을리 하지 않던 때였다. 수비병은 강화해협을 통과하여 침입해 오던 미국 군함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미국 군대는 초지진(草芝鎭)·광성진(廣城鎭) 등을 점령하였으나 광성진의 전투에서 어재연(魚在淵)이 거느린 수비병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었다. 또 갑관(甲串)에 상륙한 미국 군대도 강화 수비병의 공격을 받아 패퇴하였다. 이에 미국 군대는 물러서서 청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신미양요(辛未洋搖)다.

드디어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방이 제3국의 위협을 받을 때는‘거중조정(Good office)’을 한다”였다. 조약 상대국이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보장장치’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1905년 러·일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태프트·가쯔라 밀약을 통해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종주권을 줌으로써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할 수 있게 했다. 태프트·가쯔라 밀약은 근대 한민족의 운명을 바꾸고, 민족 수난의 첫 장이 되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갖기 위해 대한제국의 지배권을 일본에게 준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국익차원의 대외정책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35년 간 일본의 식민지재를 받게 된 결정적 동기는 태프트·가쯔라 밀약이다. 국력이 약하고 외교력이 없으면 언제든지 강대국의 먹이감이 된다는 교훈을 얻어야할 대목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자 미·소 간의 협의에 따라 38도선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나라를 분단 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 때는 한국을 도와 공산화를 막아 주었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현재 문제는 북한의 핵, 전시작전권 이양, 소파개정, 미군주둔지 환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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