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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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숙
  • 승인 2018.03.1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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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김정숙/논설위원

아기가 어떻게 자라면 좋겠어요?“공부는 잘하지 않아도 되구요.건강하고 밝고 상냥하게 자라면 좋겠어요.”
라디오 방송에서 MC와 첫 아이를 낳은 새댁의 전화통화중에 흘러나온 말이다.
그렇지.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지.
나도 그랬다.
두 아이를 낳을 때마다 부디 이목구비 다 있기를 다섯 손가락 발가락 다 있기를.
큰 눈망울이나 오똑한 코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온전하게 갖춰져 있기만을 바랄 뿐 더 무얼 바라겠는가.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바라는 대로 온전히 달릴 거 달려서 태어났을 때 세상은 천국이었다.
천국의 문이 열린 순간부터 밤낮이 환하게 눈부셨다.
“아이가 건강하고 상냥하게만 크면 좋겠어요?”
하이고 !
택도 없는 소리!
앞짚, 뒷집, 옆집 아이가 태어나 봐라.
그 아이들의 출생이 원망스러울거다.
우리집 아이는 그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불행했다.
아기 젖냄새 살냄새에 코를 박고
‘음,음.음,음... 쪽!’
아기 살에 비비고 지지는 장면을 말로 표현할 의성어, 의태어가 부족해서 어떤 소리로 써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그거,‘톡 !’
만지면 터질까 봐, 내 손의 세균이라도 묻을까봐 안절부절,어쩔 줄 모르던 그런 시절.
아기가 뒤집고 기고 걷는게 신기해서 눈을 뗄 수 없고 팔딱팔딱 뛰면 천리라도 함께 뛸 것 같던 그런 경험.
그저 근원적 발달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시절이 지나고, 아이가 멘 기저귀가방이 책가방으로 변신하면서부터 동네 아줌마 치마바람 속에 내 영혼도 활활 탔다.
아기가 아이로 변하고 신체능력은 기본이요, 공부 능력이 스펙으로 추가되면서 내 자식의  주소는 시험지 점수판으로 순간 이동했다.
내 몸에서 나왔으니 내 새끼 공부능력이 어디 갈까마는 시험점수 앞에선 내 새끼가 내 새끼가 아닌거 같아서 환장한다.
대체 누굴 닮아서.
대체 누굴 닮아서.
누굴 닮긴, 부모 닮았지.
곧 죽어도 엄마는 엄마 안 닮았다 하고, 아빠도 절대 자기는 아니라고 할거다.
나도 그랬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다가 결국 아빠의 공부머리를 의심했다.
크면서 판박이 귀신처럼 비슷해지는 지 새끼를 아빠 닮아서 키가 크는거고, 엄마 닮아서 피부가 좋은거라고, 딴건 다 닮았는데 왜 유독 학교공부에서만 주소지가 불명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그래도 아기가 공부는 잘 하지 않아도 된다고?
건강하고 상냥하게 크기만 하면 좋겠다고?
키워봐라,
제발, 시험점수 좀 보자고 할 때 ,
‘왜!’
‘왜!’
‘아, 왜!’라고 외마디 대답할 때까지 키워봐라.
젖 냄새, 살 냄새 나던 그 새끼를 당장 내다 버리고 싶어질 거다.
그렇게 수 삼년 지지고 볶던 시절이 지나고 이빨 빠진 호랑이로 부모 힘겨울 때면 체념했다가 이해했다가 결국 수용하게 될 거다.
내 피로 내 새끼 빚은 순리가 보이고, 공부 말고 잘 하는 것도 보이고 안 보이면 보일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면서 새끼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할거다.
그때 쯤 이면 부모의 숙성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보일 거다.
와인 5년산?
홍삼 6년근?
택도 없는 소리!
음.
발렌타인 30년산 ?
그 쯤 되면 부모 값도 상한가를 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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