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 성광일보
  • 승인 2017.12.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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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아니면 말고
▲ 김정숙/논설위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글쎄다.

사람은 그저 이거저거 요거저거 짬뽕으로 사는 거 같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거나 행복으로 산다거나 아니면 의지로 산다거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떠올려 보지만 그저 사람은 이거저거 짬뽕으로 사는 거 같다.

하나가 넘치면 다른 하나가 모자라고 또 다른 하나가 있으면 다시 또 다른 하나가 부족하고, 그래도 이거저거 있는 게 있으니 그거로 사는 거 같다.

있는 그게 뭐고 없는 그게 뭐고 간에 말이다.
엊그제 이불솜 털어 낼 때 흩날리던 솜털 같은 눈이 찌부득하게 공중에 날리더니 어젯밤엔 밤의 어둠과 불빛 속에서 눈이 내렸다.

어둠의 불이 밝힌 눈의 길이 수직으로 나면서 창문 밖 눈의 발이 땅에 꼿꼿이 서는 듯 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빛의 바람이 눈을 타고 부는 동안 사람 사는 세상에선 축제가 시작됐다.
또 송년.

작년, 재작년에 열린 송년의 축제는 올해도 어김없이 사람의 땅에 열렸다.
한 해를 보내는 게 축제라면야 오지게 힘들었던 한 해 였던가 벅찬 한 해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내 삶의 한 해는 오지게 벅차거나 가슴 저리게 힘든 일은 없었다.
그저 소소한 즐거움과 소소한 결핍이 내 삶속에 드나들며 아침을 열고 밤을 닫았다.

소소한 즐거움이 뭐였는지 결핍이 뭐였는지 기억도 가물한 그저 이거저거, 그거저거로 큰 탈 만 없었다면 무탈한 삶.
어쩌면 우리는 그런 해를 보내는 게 축제를 벌일 만큼 기쁘고 즐거운 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탈만 해도 잘 살았다고 자축할 수 있는 삶.
아무리 큰 일도 더 큰 일 앞에선 맥을 못 추고 용서 받거나 허용되는 그런 삶.
사람 사는 세상에 대소사는 대사가 일어나는 순간부터 소사는 그런대로 용인되는 삶이다.

가정의 대소사도 대사 앞에 소사가 그림자처럼 자취를 감추고 국가의 대사는 소사의 거취를 메스컴에서 감춘다.

일상에 대사만 있다면야 심장 후달거려서 살겠는가마는 그래도 잔잔한 소사들 사이사이 대사가 있어서 지루한 일상을 버티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어떻게 거칠고 험한 세상을 사는 게 무탈만 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환절기 감기로 오지게 고생 했고 어떤 사람은 돈 벌이가 혹독했고, 어떤 청년은 취업준비에 진을 뺐으며, 또 다른 어떤 이는 다른 어떤 일로 개고생 했다. 모두가 나름대로 당시엔 큰일 이었던 그런 일들 .

그래도 12번째 달력이 끝판을 달릴 땐 감기도 소소했고, 돈벌이도 소소했고, 취업준비도 소소했던 일상이다.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며 극복하며 살아내느라 우리는 애썼다.
그래서 한 해가 모두 지나가는 걸 송년이라고 하는걸까?
우리는 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걸까?

내 나이 반백이 지나면서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은 개념이었다.
50시간을 하루라고 하면 지금 삶의 두 배는 더 많은 일을 할 텐데, 두 배는 더 잠을 잘 텐데, 두 배는 더 운동을 많이 할 텐데, 두 배는 더 사랑할 텐데.

나에게 한 해는 보내는 게 아니라 지 혼자 훌러덩 가고 있어서 붙들려 애를 써도 잡을 수 없다. 그저 지 혼자 유유히 가고 있는 개념의 시간.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의 송년은 내가 원하지 않는 개념의 언어였다.
나는 송년하고 싶지 않다. 그저 살살 가라고, 천천히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물을 뿐이다.
어젯밤 불빛속에 내려온 눈발이 송년의 발걸음과 다시 만났다.
오늘도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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