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성광일보
  • 승인 2017.01.2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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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파솔라시도
▲ 김정숙/광진투데이 논설위원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는 딸은 피아노를 참 잘 친다.
대놓고 자식자랑 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자랑이다.
돼지와 함께 사는 것 같은 딸의 방을 보며 꾸짖다가도 피아노 연주 소리만 들으면 오금을 못펴겠다.
어렸을 때 가르쳤던 피아노 연주가 성인이 돼서 취미가 됐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가정방문 피아노 선생님을 채용했다. 연주를 배우는 목적보다 한 시간이라도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요량으로 선택한 안전망이었다.

 그때 가르쳤던 연주가 성인이 되니 화가 난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감정조절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한가한 시간을 즐기는 놀잇감이 되기도 한다.

거의 매일 울리는 피아노 소리는 우리 집에서 텔레비전 소리만큼이나 일상이 된지 오래다.
딸의 연주를 들을 때면 하루의 시름을 잊은 듯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느낌을 얘기했더니 딸은 내가 듣기 좋아하는 곡을 일부러 연주하는 눈치다.
가사 일을 할 때면 틈틈이 연주 소리가 들린다.
어느 날 딸에게 연주 솜씨가 부럽다고 했더니 딸은 이렇게 말했다.
“배워!”

 아름다운 선율 속에 머물던 내 가슴은 이 한 마디에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나쁜 년! 배우고 싶지 않아서 안 배우나?”
얼음장 같은 딸의 말에 오만가지 감정이 일었다.
“배워!” 한 마디가 내 눈에 머물러 눈물로 그렁그렁했다.
그렇지 배우면 되지. 부러우면 배우면 되지.
그날 즉시 피아노 연주 배우길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게 쑥스러워서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럼요!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선생님은 시어머니에게 말하는 며느리의 대답처럼 조심스레 말했다.
그나마 나 외에도 젊은 주부와 중년의 남성이 배우고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긴 머리를 중간에 땋은 모양의 높은음 표를 가리키며 선생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 부호를 아시나요?”
“높은 음표요”
이 부호는요? 하며 왼쪽을 향한 왕새우 부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낮은 음표요”
온음 표, 반 음표, 한 박자, 두 박자, 반 박자 등의 음표가 중년의 기억 속에 아직 머물고 있는지를 확인한 선생님은 안심한 듯 이렇게 말했다.
“아 ! 아시는 군요 !”
“그래요. 다행이에요.”
아직 내 기억 속에 오래된 과거의 음표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에요.”라고, 말한 게 아니라 속으로 되뇌었다.
걱정과 달리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연주법은 어렵지만 나잇살을 훔쳐 먹은 내가 정신세계에서 갖춰진 게 적어서 우쭐대거나 주눅이 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건 개나 물어가도 좋을 걱정이었다.
선생님이 워낙 친절하기도 하지만 성인은 바이엘이나 체르니 같은 교본이 아니라 성인용 교본으로 배웠다.
그 교본에 따라 가요를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
잘 못하면 못 하는 대로, 결석하면 결석 하는 대로 성인 대접을 받으니 과제와 출석에 대한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가볍게 배울 수 있었다.
더구나 배운 걸 잘 치면 "참! 잘하셨어요!”라고 존칭에 칭찬까지 들으니 학원에 가는 게 즐거웠다.
이렇게 시작하면 될 걸 그동안 왜 딸의 연주를 부러워만 했을까?
딸의 냉랭한 "배워!”한마디에 나는 왜 상처 받은 소녀마냥 눈물이 그렁그렁했을까?
먹고 사느라고, 아이들 키우느라고, 바빠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배울 시기가 지나서, 이것저것 이유를 갖다 대도 합당한 이유를 찾는 게 어려웠다.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바빠서였을까?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었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이유를 찾는 생각에 이끌려 아파트 계단을 오르던 중 아래층에서 내 놓은 쓰레기 박스의 글에 눈이 갔다.
"시도할 용기도 없으면서 멋진 삶을 살길 바라는가!”
용기!
그동안 난 용기를 못 낸 거다.
용기에 담긴 내 두 손이 두 달째 피아노 건반에서 노닌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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