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성광일보
  • 승인 2017.01.1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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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연세 ♡
▲ 김정숙 논설위원

목련이 겨울에 피는 꽃이었나?
마른 나무들 사이에 백목련이 꽃망울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2017년 1월 2일 ,
지금은 겨울인데 저 꽃망울은 언제 올라 왔을까?
잠시 따뜻한 그날들 하루 하루 순간의 온기를 모아 망울 틔웠을까?
내 어머니 같은 할머니가 사박사박 길을 걷는다.
저 분이 걷는다는 건 생존을 위한 걸음, 젊은 날의 걸음은 자식들 거드는 걸음.
어느덧 나도 자식 거드는 걸음과 생존을 위한 걸음을 딛고 있다.
한 걸음 더 걷는 게 하루의 목표.
아기 적 걸음마처럼 한 걸음 더 걸을수록 박수 받는 연세되셨다.
직립보행의 인간을 죽을 때까지 증명해야 하는 인간의 조건.
긴 길을 걸어 오줌이 마려워 두 다리 배배 꼬는 지경에 이르러 배낭 풀고 앉았다.
걷는 게 운동중 최고의 운동이라고 말들 하는데 걷는다는 건 ^운동^ 이라고 하지 않아도 정신이 맑아지거나 자연의 변화를 느끼거나 작은 생각들을 정리하는데도 좋은 것 같다.


 나는 지긋이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것 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걷거나 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라도 사방팔방 돌아다니는데 그 중 걸어서 싸돌아다닐 때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물론 자동차를 운전할 땐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에 빠르게 갈 수 있어서 좋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교통체증이나 주차 걱정 없이 이동하며 읽을거리도 읽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난 뭐니 뭐니 해도 걸어 다니는 게 제일 좋다.

 요즘엔 운동화나 트래킹화가 걷는데 편하게 만들어져서 긴 시간을 걸어도 발이 불편하지 않다.
하고 싶은 건 어떤 방법으로도 하는 내 습관에 발동이 걸렸다.
어떻게든 걸어보자는 거다.
그래서 직업상 강의를 하러 장거리를 운전할 때도 자동차에 운동화를 싣고 다닌다.
강의 1시간 전에 도착해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그 동네 거리를 걷는다.
걸으며 상점도 구경하고 지나는 행인도 구경하고 재래 시장이 있으면 그곳도 기웃거린다.
그러다 보면 한 시간이 훌렁 지나고 결국 내 다리가 또 걸었다.
그런 방법으로도 걷지 못할 처지라면 뾰족구두는 가방에 챙기고 운동화를 신고 걷는다.
미션을 완수할 대상 앞에서 잠시 뾰족 구두위에 올랐다가 내리더라도 운동화를 신고 움직여야 직성이 풀린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역마살이 끼었다고도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난 어쨌거나 걸으며 싸돌아 다니는 게 좋다.
누군가 내게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걸으며 싸돌아 다니는 거요!”라고 말할 거다.
깨어 있는 한 걷는 걸 좀더 즐기기 위해 -하루 만보 이상 걷기- 미션을 시작했다.
남들은 새해가 되면 새해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나는 늘상 하고 싶을 때 마다 계획을 세우니 이 계획은 작년 그러니까 한 달 전의 묵은 계획이다.
한 달 전부터 만보걷기를 실천중이다.
처음엔 만보가 꽤나 길어 보이고 멀어 보였는데 자꾸 해 보니 별로 길지도 않은 것 같다.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고 한강변에 인적이 드물 때면 가벼운 책을 읽으며 걸을 수도 있어서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오며가며 물 한 모금 마실 때 철새와 바람과 물의 몸부림과 도시의 광경을 구경하기도 하고 배부른 산에 오를 때도 미끄러지지 않는 지구 중력의 과학을 경험할 수 있다.
왜 갑자기 걷는 바람이 불었냐구?
눈치빠른 사람들은 이미 알아챘을거다.
그렇다.
나는 그런 연세 되셨다.
걷는 게 보약인 연세 되셨다.
중년의 일상에 운동이 빠지면 쪽팔리는 일상이 될까봐 시작했다.
“즈그 몸도 관리 못하면서 뭔 자식새끼 건사하느냐!”는 내 안의 욕쟁이 아주머니 말에 화들짝 놀래서 시작했다.
젊은 날엔 자식 거드는 걸음, 지금은 자식 거들며 생존하기 위한 걸음.
오늘도 걷는다.
목련 꽃망울에 비 내려왔다.
저 비로 꽃망울이 얼려나,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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